김이 문헌상에 나타난 것은 <경상도지리지>가 처음인데 , 이미 조선 왕조 초기에 경남 하동에서 먹기 시작했다고 한다 <경상도지리지>는 세종6~7년(1424~1425년)에 경상 감사 하연이 편찬한 지리책이다. 지금부터 570년 전이니까 그보다 훨씬 전 부터 김을 채취하여 식용으로 사용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 다른 문헌인 <동국여지승람>에도 김은 전남 광양에서 400여 년 전에 토산물로 채취했다는 기록이 있다. <동국여지승람>도 조선 왕조 9대 성종(1469-1494)의 명을 받아 노사신등이 편찬한 지리책이다.
이보다 200여 년 전인 고려 충렬왕 11녀(1285)에 일연 스님이 편찬한, 고구려, 백제 신라 시대의 신화나 전설, 설화 등을 엮은 저 유명한 <삼국유사>를 보면, 신라 시대부터 김을 먹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한편 일본에서의 김의 역사를 살펴보면, 건강을 위한 해조 독본으로서 오후사 쓰요시 박사가 쓴<바다 채소>라는 책에서 에도 시대의 교호 초기부터 기을 먹기 시작했다고 나와 있다. 지금부터 약300년 전으로 추정된다. 모든 문물의 전파가 그랬듯이 일본인들이 김을 먹기 시작한 것이나 양식하게 된 것 역시 우리나라를 통해서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김은 해의(海衣) 또는 해태(海苔)라고도 부른다. 그런데 왜 김을 '김'이라고 불렀을까? 구전되어 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김을 처음 발견한 사람이 김씨 성을 가진 사람이었기 때문에 '김'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어쨌든 우연히 김을 발견하여 먹기 시작하다 보니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해졌고, 그래서 자연히 김을 양식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김 양식에 관한 기록으로, 경상도 하동 지방의 전설이 있다. 전설에 의하면, 260여 년 전 어떤 할머니가 섬진강 어구에서 조개를 잡고 있던 중에 김이 착생한 나무토막이 떠내려오는 것을 발견하고 그 후 대나무를 물속에 세워 인공적으로 김의 포자를 착생시켜 양식했다고 한다.
일본에서도 양식과 함께 종이 뜨는 것과 비슷한 방법으로 초제하여 김을 만들었다. 이 초제하는 기술이 시작된 때가 곧 김 양식을 시작한 연대라고 보면 될 것이다. 그렇게 보면 일본에서의 김 양식도 우리와 비슷한 1,700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요즘 불필요한 해조를 막기 위해 유기산을 사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중국에서도 석회를 뿌려 김의 포자만 착생시키는 양식법이 복건성에서 시작되었는데, 그 연대도 200~300년 전으로 추정된다.